태그 : 칭제건원

칭제건원의 역사.

우리 나라에도 몇 안되는 칭제건원의 역사가 있었죠.

건원...

제가 알기로는

한나라 무제의 연호로 알고 있습니다만,

연호를 칭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강한 국력을 상징하는 일이라지요.

대표적으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영락,

발해 무왕, 문왕의 연호(뭐였는지는 까먹었네요 '';;)

고려태조 왕건도 천수였나... 암튼 그런 연호를 칭했던걸로 기억하고 있고,

고려 광종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예 대놓고 건원을 칭한 왕.

다름아닌 신라의 법흥왕이었습니다.

삼국유사에 남아있는 기록은 이렇습니다.

법흥왕 시기의 상대등 철부가 아뢰었다.

"임금의 명호가 없다가 서거한 뒤에야 시호로 명호를 짓는 것은

임금의 권위를 높이자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임금님이 보위에 오르신 날로부터

새 역사를 열어가시는 햇수를 헤아리는데 기준이 없기 때문에

임금이 즉위한 날쩨에 호를 붙여서 세월을 헤아리는 제도가 생겼다.

이것이 연호다."

라고 말하였다.


법흥왕 시기는 신라에서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는 시기입니다.

가야를 조금씩 통합하기 시작한 시기이고,(대가야가 이 때 통합되었죠 아마;)

지증왕 대에 이어서 신라의 중흥기가 시작된 시기입니다.

뒤를 잇는 진흥왕대에 그 극에 달하는 역사의 바탕이지요.

이런 시기의 칭제 건원은 크나큰 의미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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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에 수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연호에 관련한 기록을 조금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알고있던 사실과는 달리

고구려의 동명성왕이 제일 먼저 '다물'이라는 연호를 칭했더군요.

이에 이어서 광개토대왕이 '영락'을 칭한 것이구요.

신라에서는 법흥왕이 칭한 '건원', 그 이후로 진흥왕 진평왕 등등

신라의 황제시대가 지속됩니다.(대략 진덕여왕 시기까지 말이죠.)

백제는 아마도 근초고왕이 연호를 썼을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칠지도가 그 당시의 유물이라면, 칠지도에 새겨진 백제왕 연호는

근초고왕에 가깝겠지요.

발해는 고왕 대조영이 '천통'이라는 연호를 칭한 것 이후로

무왕 문왕이 이어서 연호를 칭합니다.

그 이후 4대 폐왕 원의(맞나요?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만;;)부터는

발해의 혼란의 역사이기에 끊겼다가

'해동성국'으로 불리었던 선왕 대부터 다시 칭제가 시작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고려는 태조 왕건의 '천수'와 광종의 연호 제정이 전부이구요,

조선조는 고종이 '광무', 그 아들 순종 역시 황제를 칭했습니다만,

대한 제국은... 할 말이 없죠 ㅎ

아무튼 황제를 칭한다는 것.

각 왕들의 칭제 시기를 보면

국가의 설립시기 및 최전성기, 중흥기에 이런 경향을 보입니다.

국가의 힘과 자부심, 정체성이 극에 달했을 때 이런 모습들이 보이는 것이죠.

삼국유사에는 법흥왕의 칭제건원만 나와 있습니다만,

삼국 중에서 그나마 제일 약소국(?)으로 평가되는 신라도

황제를 칭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자부심이 강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ㄲㄲ

신라를 제일 약소국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구요;;

아무튼

자랑스러운 역사. 칭제 건원에 대한 글 마칩니다.

by X_Guard-ST | 2009/06/21 14:00 | ★☆고전문학☆★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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