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21일
칭제건원의 역사.
우리 나라에도 몇 안되는 칭제건원의 역사가 있었죠.
건원...
제가 알기로는
한나라 무제의 연호로 알고 있습니다만,
연호를 칭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강한 국력을 상징하는 일이라지요.
대표적으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영락,
발해 무왕, 문왕의 연호(뭐였는지는 까먹었네요 '';;)
고려태조 왕건도 천수였나... 암튼 그런 연호를 칭했던걸로 기억하고 있고,
고려 광종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예 대놓고 건원을 칭한 왕.
다름아닌 신라의 법흥왕이었습니다.
삼국유사에 남아있는 기록은 이렇습니다.
법흥왕 시기의 상대등 철부가 아뢰었다.
"임금의 명호가 없다가 서거한 뒤에야 시호로 명호를 짓는 것은
임금의 권위를 높이자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임금님이 보위에 오르신 날로부터
새 역사를 열어가시는 햇수를 헤아리는데 기준이 없기 때문에
임금이 즉위한 날쩨에 호를 붙여서 세월을 헤아리는 제도가 생겼다.
이것이 연호다."
라고 말하였다.
법흥왕 시기는 신라에서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는 시기입니다.
가야를 조금씩 통합하기 시작한 시기이고,(대가야가 이 때 통합되었죠 아마;)
지증왕 대에 이어서 신라의 중흥기가 시작된 시기입니다.
뒤를 잇는 진흥왕대에 그 극에 달하는 역사의 바탕이지요.
이런 시기의 칭제 건원은 크나큰 의미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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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에 수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연호에 관련한 기록을 조금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알고있던 사실과는 달리
고구려의 동명성왕이 제일 먼저 '다물'이라는 연호를 칭했더군요.
이에 이어서 광개토대왕이 '영락'을 칭한 것이구요.
신라에서는 법흥왕이 칭한 '건원', 그 이후로 진흥왕 진평왕 등등
신라의 황제시대가 지속됩니다.(대략 진덕여왕 시기까지 말이죠.)
백제는 아마도 근초고왕이 연호를 썼을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칠지도가 그 당시의 유물이라면, 칠지도에 새겨진 백제왕 연호는
근초고왕에 가깝겠지요.
발해는 고왕 대조영이 '천통'이라는 연호를 칭한 것 이후로
무왕 문왕이 이어서 연호를 칭합니다.
그 이후 4대 폐왕 원의(맞나요?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만;;)부터는
발해의 혼란의 역사이기에 끊겼다가
'해동성국'으로 불리었던 선왕 대부터 다시 칭제가 시작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고려는 태조 왕건의 '천수'와 광종의 연호 제정이 전부이구요,
조선조는 고종이 '광무', 그 아들 순종 역시 황제를 칭했습니다만,
대한 제국은... 할 말이 없죠 ㅎ
아무튼 황제를 칭한다는 것.
각 왕들의 칭제 시기를 보면
국가의 설립시기 및 최전성기, 중흥기에 이런 경향을 보입니다.
국가의 힘과 자부심, 정체성이 극에 달했을 때 이런 모습들이 보이는 것이죠.
삼국유사에는 법흥왕의 칭제건원만 나와 있습니다만,
삼국 중에서 그나마 제일 약소국(?)으로 평가되는 신라도
황제를 칭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자부심이 강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ㄲㄲ
신라를 제일 약소국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구요;;
아무튼
자랑스러운 역사. 칭제 건원에 대한 글 마칩니다.
# by | 2009/06/21 14:00 | ★☆고전문학☆★ | 트랙백 | 덧글(0)
2009년 06월 18일
삼국유사에 적힌 도깨비 비형랑 이야기.

삼국유사에 나오는 도깨비 이야기.
도화녀 이야기를 아시겠죠?
신라의 진지왕(유알하게 신라에서 폐위된 왕으로 본명을 써서 사륜왕이라고도 불리죠)이
남의 여자인 도화녀를 뺏는 이 이야기.
이 일로 인해서 진지왕은 폐위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남성의 본능적 생식 본능(?)으로 인하여
자식이 하나 태어나니, 그가 바로 비형입니다.
비형은 출생 당일부터 굉장히 기이한데,
비형이 태어난 날 천지가 진동했다고 합니다.
그가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지왕은 죽고,
어린 비형을 도화녀가 잘 길렀는데,
날이 갈수록 그 재주가 비범하고 신이한지라,
나이 15세에 무리들을 이끄는 화랑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능력을 보고 진평왕이 집사 일을 맡겼는데,
밤마다 귀신들과 비형랑이 논다는 이야기가 돌아
진평왕이 비형을 불러 이를 추궁하니,
비형은 '전 도깨비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지요.
그리고 자신들은 물질을 다루는 법을 연구한다고 하자
진평왕이 월성 북쪽의 절에 돌다리를 하룻밤 사이에 놓으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비형랑은 물의 응집력을 이용하여 돌을 깎고 다듬어서
하룻밤 사이에 돌다리를 놓는 것에 성공합니다.
한편 길달이라는 도깨비 하나를 궁중 집사로 시키는데...
이 일이 비형의 비극적 최후를 맞도록 하는 일이 됩니다.
길달은 정치에 약한 도깨비였는데,
궁중에서 자신들을 죽이라는 의견이 계속 나오자
궁을 뛰쳐나가다가 장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깁니다.
이 일이 도깨비들에게 비형랑이 길달을 죽였다는 소문으로 와전되어
비형랑은 도깨비들에게 살해당하면서 끝을 맺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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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도깨비들은 서역인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신라시대에는 울산항 등을 통하여
메소포타미아 지역 및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무역이 비교적 활성화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죠.
신라에서 발견된 대롱옥이라던지, 송림사 5층 전탑에서 발견된 사리함 등등이
이를 대변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한국인들과 다르게 생긴 이들을 도깨비라고 부르고
그들이 하루 사이에 만든 돌다리는
서역의 발달한 수학 계산법으로 만든
과학의 산물인 것이죠.
비형은 신라 내에서도 꽤 선구적인 남자였던 것 같네요.
그런 선구적 인물이
당시의 편견에 의해서 버림받고, 그 일로 서역인들에게도 버림받으면서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뭔가를 시사하는 내용이네요.
도깨비를 말하면 흔히 이매, 마리 등의 우리 도깨비들이 등장합니다.
이들도 알고보면 서역인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뭐 그런 뻘생각을 하면서
도깨비 이야기 끝입니다 ㄲㄲㄲ
# by | 2009/06/18 13:17 | ★☆고전문학☆★ | 트랙백 | 덧글(2)
2009년 06월 16일
삼국유사에 관련 포스팅
삼국사기같이 특정 세력에 힘을 두고 쓴 글이 아닌
야사에 중심을 둔,
보다 정확한 우리 역사를 그린 책.
일단 전 삼국유사 마니아입니다.
삼국유사 관련 소설 만화 등등
진짜 옛날부터 삼국유사에 대해서
유달리 관심과 사랑을 많이 가진 < 응?
열혈 삼국유사학도 < 응? 라죠.
앞으로 삼국유사를 다시 읽어보면서
저 개인의 삼국유사 해설을 한번 달아볼까 합니다.
진짜 개인적으로 삼국유사를
제 멋대로 해부해보는 재미.
이런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ㅎ
국문학도로써의 개인적인 흥미입니다 ㅇㅅㅇ.
P.S : 삼국사기는 삼국유사한테 쨉도 안됩니다 ㅁㅇㄹ
# by | 2009/06/16 15:59 | ★☆고전문학☆★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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